현존의 깨달음

기적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한아타 2012. 2. 8.

우리의 삶이 기적이기에 우리는 기적을 별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이 점은 삶의 창조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기적에 대하여 격양된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의 증거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마음 한 쪽 구석으로 그것이 이루어지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나의 소원이자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무의식적인 부분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도무지 믿지 않는다. 현재의 나는 결핍을 느끼고 있으며, 부족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일종의 불만과 불신도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사들의 성공 기법이 담긴 자기개발서들을 살펴보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라고 가르친다.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의 느낌을 한껏 느끼라고 말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만약, 결핍의 느낌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효과가 있다. 하지만, 결핍의 느낌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실로 매우 어렵다.

 

무엇인가 원하는 것에 대한 의도를 갖는 것, 이것을 내부의도라고 한다. 이러한 내부의도는 나의 삶을 창조하는 면에 있어서 분명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강력하지 않다. 내부의도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내적인 의도를 갖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보면 매우 수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이지, 나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이러한 내부 의도는 내적인 결핍에 의한 “필요”에 의해서 발현된 것임을 기억하라. 의도의 단초와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결핍”이라는 동기에 의해 생성된 것인 것이다. 우리는 창조자 이기를 원한다. 삶을 창조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턱을 괴고 무작정 기다리는 수동적인 창조자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부의도? 물론 좋다. 하지만, 애초에 창조자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창조력은 그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었다. 창조자는 “선택”했지, 안절부절 갈망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내지 않는다.

 

좀더 명확히 말하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로 선택한 것이다. 선택이라는 말에 유의하자. 정상적인 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컵을 들기로 결정할 수 있다. 그는 단지 결정한다.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던 것을 받았다는 생각에 감정이 격양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는 그는 단지 팔을 구부려 컵을 잡았을 뿐이다. 그뿐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결과를 스스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외부의도이다. 물론, 이 외부의도에는 많은 것들이 관련된다. 이 점과 관련해서도 이후에 더 많은 점을 살펴보기 원한다.

 

말하고 싶은 점은 이점이다. 기적에 대하여 격양되거나 과도한 감정적 제스처를 갖는다면 기적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적은 우리의 감정 안에서도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추호의 의심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다. 사실,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한구석으로 의심하며 그 의심이 실존하는 것인지 조차 잘 모른다.

 

결국 우리는 이 일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냥 성실히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속 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성실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성실의 노력에 늘 결실을 보면서 사는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결실이 우리와 함께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의 생각을 격양시키지 않고 외부의도를 일깨울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나가 보기로 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도구들은 모두 있다. 우리는 그냥, 이 도구들의 사용법을 익히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기적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그냥 기적을 만들기로 선택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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