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cematic effect

기적창조 원리의 선행조건 - 실체가 명확해야 한다.

한아타 2013. 3. 6.

 

 

 

 

 

끌어당김의 법칙이 가진 가장 큰 맹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메커니즘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씨크릿 DVD의 처음 부분을 보면, 밥 프록터라는 분이 나와서 하는 얘기가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이해가 안갈 수도 있는데 그것을 억지로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기가 어떻게 어떤 원리로 힘을 내는지 알 순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것처럼 그냥 "끌어당김의 법칙"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편리하고 즐거우며, 신비로운 느낌까지 주는 말이다. 혹자는 생각 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비슷한 것을 끌어당기는 거라는 건 알겠어. 나를 대신해서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그 우주라는 건 뭐지? 먹는 건가?' 바로 이 시점부터 실체의 불명확성이 드러난다. DVD를 계속 보면, 우주는 긍정적 암시를 우주로 날린 어떤 사람에게 "분부만 하십시오~!"라는 아주 가슴 든든하게 하는 말을 한다. 와~ 정말이지 사람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매혹적인 사건 전개이다.

 

그럼,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이 우주는 '인격체'인가? 우리는 소원을 원하고 암시를 줄 때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해야 하는가? 우주가 알아 들었다는 걸 어찌 알지? 내가 마음으로부터 원하면 우주가 알아듣는다는 건가?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데, 그럼… 그 소원을 이루는 힘은 나의 내면에서 오는 건가? 아니면, 내가 아닌 별개의 존재나 힘일까? 만약, 별개의 인격체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건 신을 말하는 걸까? 인격체라면… 나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이 수도 없이 생기는 이유는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메커니즘적인 힘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불명확하다는데 있다. 어떤 이들은 '상위자아'라고도 하고, 나와 연결된 우주의 에너지라고도 한다. 상위자아? 나와 연결된?? 그럼, 소원이 이루어지는 동안 계속 내가 마음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일까? 이것을 딱부러지는 언어로 설명해 놓은 책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믿으라는 말을 끊임 없이 이야기 하는 소형 종교쯤 되는 것은 아닐까?

 

반면, "평형성의 원리"는 나와 연결된 무엇이나 나와 동일한 생각을 공유하는 실체가 불명확한 그 무언가가 아니다. 이건 그냥 도구이다. 우리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운행하는 KTX, 농부들이 사용하는 전자동 탈곡기 같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그냥 선택을 한다. 부산에 가는 표를 끊어야 겠다거나 탈곡을 하기 위해 전원 스위치를 켜야 겠다는 식의 선택만을 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KTX나 탈곡기가 무심히 움직이는 그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설명하는 '우주'의 개념을 살펴보면 이게 도통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다. 내 안의 무엇인지, 나와는 별도로 존재하는 그 무엇인지, 우주에 존재하는 유형하는 힘인지.. 그리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들어서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것인지 당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단 거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설명하는 책들이나 자료들에서도 설명이 들쭉 날쭉이다. 수호천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수호천사면 수호천사지, 수호천사와 "같은 것"은 또 뭐꼬?), 신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의 자아가 확장 할 수가 있어서 확장된 자아의 형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신은 이 말들이 이해가 가는가? 이 말들을 언급하는 나 자신도 미치겠다. 내가 이해력이 좀 떨어지는건가? 그래 그런지도 모르지.

 

다시 관심을 돌려 "평형성의 원리"를 언급하자면, 이건 물질과 물질 사이에 일어나는 평형화 되려는 현상이다. 비 오는 날 빗물이 흘러 움푹 패인 곳을 메우는 것처럼, 그리고 고기압이 저기압으로 이동하려는 자연스런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처럼 .. 그냥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관된 하나의 흐름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우리의 마음의 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냥 하나의 도구이다. 그러나 매우 강력하고 거침 없는 효과 만점의 도구이다.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격체와 같은 모호한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이 도구는 우리의 의지나 우리의 의중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냥 존재하는 하나의 흐름이라는 얘기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면, "평형성의 원리"는 정육점에서 쓰는 육절기 톱과 같다. 이 톱은 고정되어 있으면서 동일한 움직임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커다란 고기덩이를 올려서 적당한 크기로 "잘리도록"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에 반해 "끌어당김의 법칙"은 살아있는 톱과 같다. 의지를 가진 이 톱은 고기를 냉장실에 넣어 놓으면 지가 다 "알아서" 고기를 바르고 적당한 크기로 고기를 다 썰어 놓는다. 적당한 크기가 뭔지 모호하긴 해도 아무튼 그렇게 작업을 수행 한다는 것이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살아 있는 톱은 수가 틀리면 작동하지 않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 어떤 설명이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들리는지는 당신이 판단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판단력을 믿는다.

 

이 도구의 사용법이 궁금한가? 평형성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원하는가? 그럼, 이어지게 될 다른 부분들의 내용을 놓지 말길 바란다. 당신은 이 도구를 가질 자격이 있다.

 

 

지난 글들 :

 

 

끌어당김의 법칙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의 긍정에 대한 심리는 사실상 '종교'이다.

'더 시크릿'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한계는..

맹신적 긍정의 생각과 끌어당김의 법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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