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cematic effect

생각계에서 작용하는 평형성의 원리

한아타 2022. 1. 10.

평형성의 원리 그리고 생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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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성의 원리는 생각계에서도 작동한다. 평형화 현상이 생각의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생각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로 표현함 없이 생각만으로 언제나 예외없이 같은 생각이 전염되거나 확산된다고 말하긴 어렵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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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두해두고 말하고 있는 것은 양심이나 도덕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좀 바보 같은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당신은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내가 하고자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양심과 도덕의 개념적 느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라는 것이다. 질문이 좀 이상한가? 그래 맞다. 내가 생각 해도 좀 질문이 이상 한 것 같긴 하다. 어쩜 지금쯤 "질문이 뭐 이래?" 요러고 있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질문은 우리의 내면과 관련된 본질적인 차원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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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성과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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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된다. 그렇다면, 그 마음의 소리 즉 그 느낌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무엇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양심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나? 무슨 연유로? 이런 양심의 문제는 곧바로 "도덕"이라는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무엇이 이런 명제를 만들었을까? 당신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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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야기 해서, 양심이란 내면의 불편한 느낌이다. 무엇이 이런 불편한 느낌을 초래하는가?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나는 이 경우에도 "평형성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지금 이 순간 내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알겠지만, 양심이란 것은 자신이 사는 곳의 전통이나 통념에 따라서 다르게 작용한다. 거기에 더해 공간적인 차원이나 시간적인 차원에서도 다르게 작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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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좁은 도로에 설치된 횡단 보도의 빨간 신호등을 보고 처음엔 법규에 위반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멈춰서서 푸른 신호등을 기다릴지 모른다. 그런데, 맞은편 큰 건물에서 점심시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좁은 도로여서인지 사람들은 그 시간 신호등은 없는 듯 무심히 길을 건넌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나는 그냥 길을 건너기로 한다. 내가 길을 다 건너고 나자 푸른 신호등이 그제야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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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에피소드인가? 그럴 거라고 생각 한다. 우리의 이성은 사회적 법규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기존에 자신 스스로가 세워 놓은 양심이 일차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별스럽지 않은 도로 횡단으로 인해 잠시간의 주춤 거림을 느낀다. 그리고 주변의 강한 에너지와 분위기는 곧바로 몇초도 안되어 자신에게 "평형화"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별스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자신도 도로를 활보하게 되는 것이다. 법규가 바뀐 것이 아니라, 양심의 기능이 바뀐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의 "불편한 느낌"이 사라진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 맞다. 주변의 분위기에 의해 동화된 새로운 느낌 즉, 나에게 전달되어 평형화된 기운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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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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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극단적 예를 가정해 보자. 맘씨 고약한 스크루지 같은 그러나, 매우 유복한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어느 날 가난뱅이의 마을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 마을은 그야말로 굶주리고 병약한 사람들 투성이였다. 동정심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었던 이 사람 이 미을에 머무는 동안에 불편한 느낌이 전혀 없을까? 아니다. 이 사람은 내적인 불편함을 분명히 느끼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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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평형성의 원리가 이 사람의 역량이나 부의 에너지를 다른 사람과 나누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을 결론적으로 나눌 것이냐 말것이냐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 마음 가운데 생기는 불편한 느낌의 존재이다. 인간은 평형성의 원리를 저항하면 불편한 느낌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불편한 느낌은 내적인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때문에, 자신의 신념과 법의 가치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라도 주변의 상황이 그렇지 못하면 상당한 심리적 압박과 불편한 느낌을 가지게 되어 있다. 물론, 그 반대 경우여도 같은 불편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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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평형성의 원리는 생각계에서 분명하고 극명한 방법으로 적용된다. 개인이 세운 신념이나 가치관적인 측면에서 이야길 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나 도덕적인 관념에 있어서 혹은 생각의 한 형태인 감정적인 측면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감정과 생각은 사람의 내면의 모습들이며, 수시로 이것은 내적인 혹은 외적인 환경에 의해서 변화 한다. 그 중심에 "평형성의 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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