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깨달음

체제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사랑이라는 단어

한아타 2012. 3. 17.

많은 종교들에서 그들의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특성은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사랑”이라는 특성은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대표되는 슬로건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많은 종교들에서는 사랑이라는 특성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도 사랑이라고 불리는 인간적 특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테두리 내에서 구성원들은 안전함을 느낀다.

아주 오래 전, 한국이 휴거설로 떠들썩하던 때… 우연찮게 나는 그 휴거를 믿고 있는 단체의 성원 중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매우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신실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가식없는 소박한 웃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적인 부면에서는 그 단체의 성원들을 칭찬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가르침에 성서에서 말하는 “신의 사랑”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일부 한국의 종교들에도 언제나 그런 사회에서 관찰되는 수수함과 단정함, 질서들이 관찰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종교에 매료 되는 것은 그 종교의 복잡 미묘한 교리가 아니다. 그들의 우정적인 태도와 가식 없는 환영, 도덕적 깨끗함에 매료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 진리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방문자들이나 초심자들에게 보여지는 그런 유의 우정적 사랑은 가식은 아닐망정 그 종교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가시적으로 볼 때 일부 종교들에서 그런 것들이 관찰되긴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들의 비위나 비리를 가리려는 불법적인 행위, 직권남용, 관념적 권위에 대한 과도한 충성, 인간의 제안을 신의 목소리로 격상시키는 듯한 시도들, 불신자들에 대한 혐오감, 종교적 배신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이면서 인권침해적인 행태들은 흔히 일어나는 일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성서 골로세서에는 “사랑은 온전하게 묶는 띠”라는 표현이 있다. 그렇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종교적 관념의 포로”들에게 있어서 그들을 단단하게 결속시켜주고 소속감을 갖게 하며 안정감을 갖게 하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그들은 그 조직 바깥으로 나가면 그런 안정감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사실이다! 이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들의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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