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깨달음

오늘날의 긍정에 대한 심리는 사실상 '종교'이다.

한아타 2012. 10. 20.

'더 시크릿'이나 '긍정의 힘', '꿈꾸는 다락방'을 비롯한 요즘의 자기 개발서들은 모두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사람들을 고무한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 자체는 좋은 것이다.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풀이 죽어 있던 자신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로, 무조건적인 긍정은 되레 화를 부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도외시 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런 감정의 흐름에 자신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화'나 '부정'적인 생각들을 소위 '정상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게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때때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꾸만 부정하다보면, 어떤 것이 진짜 '나'의 본질인지 고민하게 되고 어떤 경우엔 자괴감이 들게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렇게 하면 분명히 자신의 삶이 바뀐다.'고 했는데.. 안바뀌는 걸 보니...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야. 라는 한층 더한 부정의 암시가 자신을 감싸게 될 수도 있다.

 

 

 

 

어쨌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앞서 언급 했듯, 나는 긍정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우려되는 것은 '긍정'이 더는 '독려되는 하나의 관념'이 아닌 하나의 종교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지금의 세태는 그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난 그러한 관념의 무더기를 '긍정교'라고 부르곤 한다. 종교라고? 그래 맞다. 이건 하나의 종교다. 풀이 죽어 있는 친구 하나에게 '기운내... 잘 될거야~' 하는 식의 격려적 차원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은 이제는 긍정을 하나의 주문인양 생각하고 마술효과를 기대한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삶이 '긍정의 주문'으로 인해 짠하고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른 글에서 살펴 본대로... 6억부나 팔린 그런 책들의 긍정교 마술은 단 1%의 성취적 확률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너무 초라한 결과이지 않은가?

 

( 이전 글 관련 설명 : http://hanata.tistory.com/89 )

 

그래도, 혹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을 '긍정교'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그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무참히 뭉개버리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늘날의 긍정의 부르짖음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하나의 '종교'라고 부르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이 다소 거슬린다면 지금 인터넷 창을 꺼버려도 좋다. 나는 그냥 글을 쓰는 한명의 글쟁이일 뿐, 나의 생각이 '절대적 생각'이라고 말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냥, 이곳은 나의 블러그이고 나의 생각을 나는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기왕에 글을 읽기로 했다면 감안하고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전제를 두는 이유는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어떤 부분은 일반 종교인에게나 긍정의 관념에 열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쾌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 두지만, 혹 불쾌한 부분이 있다면 부디 나를 용서하길 바란다. 이제 뜸은 그만 들이고 내 이야기를 계속 해 보겠다.

 

오늘날의 긍정에 대한 관념적 열광을 '종교'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무조건적인 일발통행적 열광이 관련되어 있다. 긍정의 관념적 효과를 말하는 사람들은 마치 억지식 '긍정의 생각'에 신비스런 힘이 있거나 마술같은 능력이 있다고 여긴다. '분명한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고, 마술처럼 일이 풀릴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종교들에서 신은 전지 전능해서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부면에서는 '종교적인 생각'이 더 유연하고 설명이 잘 된다. 적어도 종교에서의 '신'은 신 그 차제만으로도 하나의 인격체이다. 소원했던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냥 이것이 신의 뜻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다. 신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게끝날 일이다.

 

하지만, '긍정교'는 다르다. 긍정의 힘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불변의 룰이고 이것에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만약 (사실, '만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웃기다.) 일이 잘못되어 원하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살은 어디로 가는가? 그 화살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겨누게 되어 있다.

 

'내가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나에게 문제가 있는게 분명해. 왜 안되지? 뭐가 문제지? 아~ 난 역시 안되나봐. 내 생각을 조절할 능력 조차 없나봐' 이런 식의 자괴적인 생각들을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이다. 생체기를 낼 무기를 자신의 심장에 겨누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종교 역시 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바랬다는 죄책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자신의 본질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긍정교'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여기기 때문에 억지식 긍정 자체에 대한 자신의 본질을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긍정에 대한 무한적인 어색한 표출은 자신의 본질적 의지나 본질적 감정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한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는 면에 있어서 종교와 그 모양이 닮았다. 하지만, 내가 긍정에 대한 짜내기식 관념이 종교를 닮았다고 하는 것에는 다른 점이 더 관련되어 있다.

 

종교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신을 '변호'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신은 '변호인'이 필요치 않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냥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된다. 왜? 전지전능하니까... 그리고 만물을 창조한 신이 인간처럼 미약한 '변호인'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 자체가 사실은 미스이다. 뭔가를 필요로 한다면 그건 신이 아니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종교인은 신을 변호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종교인들은 실제로 신을 변호하고 있다. 자신에게 환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신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이런 시험을 나에게 허락하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이 잘 되면, 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해서 내가 이렇게 잘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잘 되도 신의 사랑이고, 못되도 신의 사랑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신이 인간을 사랑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보다 더한 논리 비약적 변호가 어디 있는가? 신이 인간의 변호를 받고 있다고 말한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혹은 신이 실제로 존재하건 존재 하지 않건 앞서 말했던 모든 양면적인 상황은 있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 이런 말을 하는 나는 틀림 없이 무신론자일 것이라고 생각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의 생각은 유신론에 가깝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생각은 범신론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 안에 신의 특성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힘을 초월한 능력있는 인격체로서의 신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생각 하는 것처럼 '절대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서는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도 질투와 계략과 이중성을 가진 우리와 비슷한 성향과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한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빗나갔으니, 다시 제자리를 찾아 보겠다. 어거지 긍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종교와 비슷하거나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그 부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괴감 어린 논리에는 설명이 안될게 없다.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가 긍정의 암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혹여 잘되면 내가 긍정의 암시를 효과적으로 잘했기 때문인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니, 긍정의 힘을 말하는 책들을 읽은 사람들이 '저는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안되나요?'하고 질문을 하더라도, '당신의 방법에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그냥 끝나는 것이다. 자꾸만 자신을 때려야 하고 그 때림은 분명히 부정의 생각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들을 어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데 맹점이 있다.  이런 악 순환은 종교보다 가혹함이 한수 위라고 도 할 수 있다.

 

어떤가? 오늘날의 긍정에 대한 심리가 사실상 '종교'라는 결론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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