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깨달음

끌어당김의 법칙의 시대는 끝났다.

한아타 2012. 10. 22.

내가 '끌어당김의 법칙의 시대가 끝났다'는 표현으로 제목을 정하긴 했지만, 사실상 끌어당김의 법칙이 절대적으로 적용되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중력이나 자기력과 같이 불변의 자연 법칙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소위 자기개발서들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불변의 원칙이나 법칙이 아니다.

고로, 끌어당김의 법칙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던 시대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존재 하지 않았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다만, 이것이 사회적 붐으로 유행처럼 번져 나가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그 영향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너무 비판적으로... 혹은 작의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만 살펴 보면, 오늘날 이야기 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불변의 원칙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끌어당김의 법칙은 '같은 것은 같은 것을' 혹은 '유사한 것들은 그것들끼리' 끌어당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소위 말하는 '변화'와 '창조'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끌어당김의 법칙을 이용해서 긍정적인 무언가를 생각하면 유사한 것이 끌려 온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정말 유사한 것들끼리만 끌어당길까? 혹은, 유사한 것들끼리 만날 때 비로소 창조와 변화가 생길까?

 



대답은 '아니올씨다.' 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번 생각 해 보라. 조금만 눈을 돌려서 말이다. 단순히 이야기 해서, 자기력은 같은 극끼리 끌어당기는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안다. 서로 다른 정반대의 특성이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자석의 N극은 같은 N극을 죽어라고 밀어낸다. 그리고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S극을 가까이 하면 둘은 정말 순식간에 서로를 끌어당긴다.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창조와 변화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결혼과 출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보다 물리적인 '창조'와 '변화'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 해 보기 바란다. 이 경우에도 서로 정 반대의 특성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그 신비하고 이상적인 변화와 창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혹자는 위의 예를 내가 너무 이야기를 비약해서 하는 거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비약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은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의 주장이 비약이고 억지이다. 이것을 '법칙'으로 명명 하려면 이것은 예외 조항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조사를 많이 해 볼 필요도 없이 힐끔 눈만 돌리면 예외 사항이 눈에 들어 온다면 그건 '법칙'이 아니다. 그냥 몇몇 사람들이 발표한 '이론'인 것이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정설처럼 여겨졌던 '진화론'도 '진화의 법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많은 증거들이 있지만, 예외성이 존재하며 어떤 경우에는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하게 증명도 안되는 예외성이 풍부한 이것을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명명한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우주 역사 어디에도 '끌어당김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던 때는 존재 하지 않았다.

 



우리 주변을 살펴 보자. 인위적으로 비슷한 것들을 모아 두었을 때 아름다운 창조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다양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그 다양성이 조화를 이룰때 우리는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다양성이 허용되는 곳에서 더 많은 창조와 창의성이 생긴다.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옷을 입고, 한곳에 몰려 있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끌어당겨 붙여 놓은 케이스이다. 그건 군대나 교도소이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군대나 교도소를 폄하 하거나 비하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그런 사회가 과연 '창조'나 '변화'의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말하기 위한 얼마의 예일 뿐이다.

 

알다시피, 그곳들은 비슷한 인격체적인 요소들을 모아 놓은 곳이고 각자에게 존재하는 다양성을 획일화 해서 인위적 유사성을 강제한 사회이다. 물론,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은 교도소나 군대 자체의 긍정 혹은 부정적 요소들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곳은 정체성과 일률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볼 때, 풍부한 다양성이 존재하는 일반 기업체들은 어떠한가? 존재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고려된 매우 창의적인 목표와 결과물들이 나온다.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어쩌면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객체들이 능력과 방향성이 보장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변화'와 '창조'라고 부른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살펴 보면, 바람의 움직임이나 물질의 이동, 순환 과정들은 모든 것들이 일정하고 평이하게 같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바로, '차이'와 '다름'이 존재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높고 낮음이나 크고 작음, 강한 것과 약한것, 때론 전혀 다르거나 정 반대의 것들이 존재 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볼 때도 우리는 획일화된 사회 보다는 '다양성'이 인정이 되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부른다. 나와 '다른' 무언가를 '틀림'으로 규정하고 정형화된 틀 속에 가두려고 할 때 사회적 마찰과 부정적인 결과들이 속출한다.

 

어떤가? 조금만 살펴 보아도, 같은 것은 같은 것을 언제나 끌어당기는 것은 아님을.... 그리고 설혹 같은 것들을 인위적으로 뭉쳐 놓는다 해도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변화'나 '창조'가 일어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직도 '끌어당김의 법칙'을 기정 사실로 생각 하는가? 이미 그것은 세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녹슨 칼이 되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이미 내가 설명한 예들에 들어 있다. 바람이 부는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기압의 차이를 '평형화' 하려는 자연의 특성 때문이다.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가? 밀도가 아주 높은 하나의 점에서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곳으로 팽창해서 '평형화' 되려는 강력한 힘에 의해 빅뱅이 일어나면서 우주가 탄생 하였다.

 

평형화 하려는 특성이라고? 그렇다. 나는 이와 같은 우주의 평형화 하려는 흐름을 '평형성의 원리'라고 명명 하였다. 이제 구체적으로 이것이 우리 생활과 관련해서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조금씩 살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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