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깨달음

끌어당김의 법칙 VS 평형성의 원리 (첫번째 이야기)

한아타 2012. 10. 25.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끌어당김의 법칙이 오늘날의 대세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끌어당김의 법칙은 많은 괴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은 유사한 것을 끌어당긴다' 는 것에 그 모티브를 두고 있다. 그래서, 긍정적인 것들을 생각해야 긍정적인 것들을 끌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긍정적인 것들을 생각 해야 하고... 그리고 긍적적인 마인드를 가져서 삶의 의욕을 고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긍정은 말 그대로 긍정이다. 긍정이라는 단어 하나가 갖는 유쾌함과 거기에 더해, 유사한 유쾌한 요소를 끌어당길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고 요즘 같이 살기 힘든 때에 '잘될 거야'라는 생각 만으로도 내 신세가 바뀌어질 수 있다니... 이건 정말 희망 적인 얘기다. 희망이 갖는... 그리고 인간으로서 희망에 거는 기대 심리는 굉장하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의 "끌어당김의 법칙 BOOM"을 만들었다.

 

양산 되는 자기 개발서들의 90%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끌어당김'이나 '끌어당김의 법칙', '긍정'등의 단어를 책 제목으로 채택한 서적들도 수백종에 이른다. 이처럼, 끌어당김의 법칙은 이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컨텐츠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컨텐츠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사후 문제이다. 마치 약장수가 약을 팔고나서 그 자리를 뜨고 나면 나중에 생기는 부작용은 나몰라라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분명히 약을 썼는데 안 듣는 것 같다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너희들의 약먹는 방식에 문제가 있으니 이거보다 센 다른 약을 먹어보라며 여전히 효능이 의심스러운 약을 건네는 식이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이야기 하면서 너무 지나친 비약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인가? 글쎄...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일들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이를 통한 '마술 효과'를 기대한다. 자신의 삶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더해 그것도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미 나의 다른 글들을 통해 살펴 봤듯이.... 끌어당김의 확실한 효과를 본 사람은 극히 미미하다. 책을 읽거나 그 사상을 접한 사람들의 1%만이라도 확실한 효과를 보고 있다면... 그래서 그들의 사람에 승승장구가 눈에 띄게 있어 왔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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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이전 글

 

끌어당김의 법칙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의 긍정에 대한 심리는 사실상 '종교'이다.

'더 시크릿'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한계는 무엇인가?

맹신적 긍정의 생각과 끌어당김의 법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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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혹시 내가 '긍정의 시도'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런 생각들로 인해 비슷한 유의 다른 컨텐츠로 관심이 옮아가게 된다. 처음에 '시크릿'으로 시작된 관심은 시크릿에서 이야기한 '확언' 부분이나 '비주얼라이징' 부분이나 '글로 남기는'부분에서 자신이 뭔가 잘못 되어 있거나 빠진 부분이 있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보충 해 줄 수 있는 다른 컨텐츠를 찾게 된다.

 

'더 시크릿'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부분일 것이다. 자신에게 뭔가 부족해서 '기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다른 컨텐츠를 찾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가리켜 자칭 그 분야의 중독녀 중독남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는 보았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자신은 '시크릿'을 경험했다고 한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지 않은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거나 공돈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이쪽에 심취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시크릿'은 거기까지였다. 비주얼라이징(심상화)과 긍정적 마인드, 비젼보드 만들기, 글로쓰는 활동들, 그외의 내적인 트레이닝 등등... 시크릿에서 말하는 그러한 유의 마음 다스리기는 그에게 더 일상적이고 더 익숙한 것이 되어 갔다.

 

분식집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했던가? 당연히 해를 거듭해 갈 수록 그는 '시크릿'에서 이야기한 활동들에 더 능숙하고 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그와 관련된 책을 쓰는 사람을 조언해 줄 정도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년이 지난 그의 그의 형편은 매우 힘들어 졌다. 그가 성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고 시크릿 실천 활동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의식주를 걱정하고 병약해질 정도가 되었다.

 

비단 이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에 '시크릿'이 적용된다고 생각 했던 많은 사람들이 더는 자신의 삶에 변화 없음을 감지하고 실망하고 있다. 시크릿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크게 세가지이다.

 

하나는 시크릿과 유사한 다른 컨텐츠를 더욱더 열심히 찾아 헤맨다는 거다. 때론, 오컬티즘이나 다른 학문에도 관련을 맺는다. 물론, 나는 오컬티즘과 같은 것들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름 매력있는 분야라고 생각 한다.

 

두번째 반응은 자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괴리감과 싸운다는 거다. '왜 안되지?' '나에게 문제가 있나?' 그러다가 멈춰서 생각 하기를 '아~~ 이런 생각도 부정적인 생각인데... 그럼 나보고 뭐 어쩌란 얘기지? 부정적인 생각은 하면 안되구... 안된다는 걸 인정할 수도 없구, 그렇다구 시크릿이 잘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이런 괴리감과 싸우기를 수차례 하는 것이다.

 

세번째 반응은 시크릿과 끌어당김의 법칙 자체에 대한 열혈 안티로 돌아서는 것이다. 그런 건 존재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그 사람들은 무너진 자신의 괴리감을 세우고 나름의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한다.

 

놀랍게도 세가지 중의 하나에 해당 되는 사람이 '시크릿' 책을 읽은 사람들의 95%가 넘는다. 나머지 다른 부류의 사람들 중에는 그냥 하나의 흥미거리로 여기거나 별 관심없이 컨텐츠를 접한 사람들도 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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