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에 대하여

내가 만난 나르시시스트 : 그들은 대화의 독점을 원한다.

한아타 2022. 1. 13.

대화의 독점을 원하는 나르시시스트

나 :
어제 했던 프리젠테이션 카메라 상태가 안좋던데 보시기에는 어땠나요?
b :
프리젠테이션 시간을 뒤로 미룰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대가 좋을 것 같아요.
나 :
네, 그러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카메라 화면은 어떤 분 담당인가요?
b :
프리젠테이션 양식 내용 준비는 P 선생님과 K 선생님이 너무 잘 해 주셨어요.
나 :
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근데 이게 청중한테 보여지는 부분에 신경을 좀 써야 할 듯 해요. 플레이 화면 초점을 좀 더 만져야 할 듯 합니다.
b :
행사가 잘 끝났으니, 충분한 휴식들 취하시구요. 내일의 준비에 만전을 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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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쯤, 전주에 잠시 살 때 그 지역 커뮤니티에 소속 되어 있으면서 이런 장면이 연출된 적이 있었다. 얼핏 보면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 되는 것 같은데, 말을 자세히 보면 제대로 연결되는 대화가 하나도 없다. b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논점을 비켜간다는 혹은 비켜 가려고 한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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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의 트릭

그와의 그런 대화는 그 때 뿐만이 아니었다. 담백하게 끝날 수 있는 대화도 정신없이 그가 말하는 너무나 많은 주변 이야기들에 의식이 분산되고 나면, 꼭 필요하거나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물건이 분산되고 어질러진 방에서 인감도장을 찾는 것처럼 다시 본래의 목적성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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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깊이 잘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이건 일종의 트릭이다. 동문서답 혹은 불교의 스님들을 흉내내는 듯한 모조 '선문답'식의 상황 때문에 상대는 원하는 담백하고 명료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오히려 말이 주변에서 겉돌고 논점이 가려지는 방대한 시간 속에서, 간간히 튀어 나오는 그의 박식하고 매력적인 컨텐츠에 사람들은 정신을 빼앗긴다. 처음엔 홀린듯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집에 돌아오면 '오늘 내가 뭐한거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느낌이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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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보통의 회의는 어떤 기업이나 공동체라 하더라도 한시간이나 길어야 한시간 반이면 충분하지만, 회의 시간의 상당부분이 논점이 흐려지는 박식한 그의 주변 이야기로 채워지다 보니, 그런 회의를 일주일에 두 세 번을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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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는 그 공동체의 핵심 맴버이자 리더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긴 발언권이 그에게 억지로라도 허용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그가 다른 구성원을 혼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려면 아직도 멀었어!" 비교 대상을 '자신'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그를 보며 놀랐던 적이 있었다.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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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그러하듯, 충격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를 지지하는 몇 안되는 '코디펜던트'를 장착하고 있다. 그가 화를 낼 때, 화를 내는 이성적 이유에 대해 물으면 그를 변호하면서 "흥분을 한 건 맞지만 화를 낸 건 아니다"라며 궤변으로 그를 감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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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 공동체의 능률성은 늘 제자리였다. 회의 시간을 그렇게나 많은 분량 사용하면 세계 일류기업이나 유력한 커뮤니티가 되었어야 맞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30분 정도의 회의 시간을 갖는 커뮤니티만도 못한 능률성이 그 커뮤니티의 특징이었다. 일시적으로 이야기 되고 실제로는 보류 되거나 폐기되는 일들이 허다했다. 2~3년 유야무야 질질 끌어지는 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르시시스트를 지원하는 코디펜던트


커뮤니티의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들은 전체 커뮤니티가 아니라, 그를 추종자처럼 따르던 5명 미만의 '코디펜던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1년, 2년, 3년...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도 커뮤니티의 '실제' 외형은 더 늘어나거나 발전되지 않고 5명 그 멤버들만의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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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8년 전쯤, 그 나르시스트와 그를 따르는 서너명의 코디펜던트와의 '무리짐'을 거부하고 그 문화 커뮤니티를 나오기로 했다. 무수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 커뮤니티를 오갔지만 거기에 마음을 다해 정착한 사람은 없었다. 말도 안되게 지리한 회의 시스템과 대화 독점, 리더의 기교에 가까운 자기합리화, 그리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내부적 염증 때문에 8년 전에도 5명... 지금도 5명... 그냥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차라리 그럴 거면 1인 교주 체재 사이비교라도 차리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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