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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라고 하는 것

한아타 2024. 2. 4.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목적어가 필요한 언어적, 학문적 의미의 깨달음이 있는가 하면

차원간의 유저와 현실 세계의 지구별 아바타를 이해하는 깨달음도 있다.

또한, 상위 차원의 존재를 넘어 '참나'라고 불리는 순수의식에 대한 깨달음도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세존(싯다르타)이 경험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에 해당하는 깨달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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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의 깨달음을 '열반의 존재'가 되는 것과 연관짓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열반의 존재'가 되는 것과 '깨달음'은 같은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영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싯다르타가 그토록 이야기 했던 무아(無我)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무한희열이 존재하는 무아지경(無我地境)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감각이나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무아(無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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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열반'은 무아(無我)가 아니라, 업그레이드 된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열반의 존재' '깨달음의 존재'와 같은 의미가 될 수 없다.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에 해당하는 깨달음은 찰라에 다가온다.

순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냥 깨닫게 된다.

언제 깨닫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걸 언어로 표현 할 수도 없다.

깨달음의 순간이 왔다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깨달음의 시간이 짧다고 해서 아쉬워 할 이유가 없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자아는

이제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그 순간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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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말 그대로 깨달음이다.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제1원인이자 '붓다'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 조차도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수행을 해서 우등생이 되거나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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