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깨달음

기적창조 원리의 선행조건 - 예외성이 없어야 한다.

한아타 2012. 12. 1.

 

 

끌어당김의 법칙은 너무 많은 예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법칙이라고 명명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미 이야기 했다시피, "끌어당김의 법칙"은 끌어당김이라는 특성을 가진 하나의 현상일 뿐이지 '법칙'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현상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말하는 기본 왁구는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반드시' 끌어당긴다."는 것인데, 이미 설명 했다시피, 가장 원초적인 것에서도 그 법칙은 깨졌다. 예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N극과 S극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완전 상극의 반대의 힘인데 그 둘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남녀사이의 끌림은 가장 원초적 의미의 변화와 창조를 가져 온다. 그러나 그 둘은 가장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개념이다. 획일화되고 정형화 되어 있는 사회... 비슷하고 똑같은 것들이 모여져 있는 사회에서는 좀처럼 변화와 창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양성이 보장 된 사회, 다양한 방향성의 갈래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더 많은 창조와 혁신이 일어난다.

 

많이 연구해 볼 필요도 없이, 이렇듯 조금만 눈을 힐끗 치켜 떠도 수없이 많은 예외성을 볼 수 있는 생각이나 이론이 무슨 "법칙"인가? "끌어당김의 법칙"은 그 "법칙"이라는 수식어와 꼬리를 떼 내야 한다.

 

 

 

 

"평형성의 원리"는 과연 어떠한가? 기본적으로 '평형성의 원리'는 "모든 것을 막론하고 우리가 보고 느끼는 존재계 안에는 평형화 하려는 불변의 특징이 있다."는 생각이다. 예외성?? 아직 나는 그것의 예외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기압은 저기압으로 이동해 '평형화' 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밀도가 높은 곳의 것들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여 '평형화' 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감정은 그것이 기쁨이건 슬픔이건... 내면의 과부하를 느끼면 그것을 외부로 폭발하거나 유출시켜 평형화 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저항하면 사람은 죽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부작용을 체험한다.

 

자연계, 감정계, 비물질계, 에너지계.... 적어도 우리가 인지 할 수 있는 모든 세계 내에서 "평형성의 원리"는 작동하고 작용하고 있다. 이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평형화 하려는 특징을 저항 할 때... 사람은 괴로움이나 심한 고통을 느낀다.

 

그렇다. 만약..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기적 창조의 원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예외성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이 "평형성의 원리"처럼 말이다.

 

기적을 창조하는 원리가 가져야할 또 다른 선행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성과 논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극히 일부 사람만 이해하고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기적창조'의 원리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두번째 선행 조건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붙이는 글 :

 

저의 위 글에 어떤 분이 댓글로 반론을 올리셨던 것 같습니다. 몇시간을 두고 분석해서 글을 보진 않았습니다만, 지하철역 입구에서 관리자 (admim) 계정 으로 댓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내리듯 확인 했습니다. 아마, 이미 올렸던 글도 모바일 관리자 계정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지워진 것으로 사료 됩니다.

 

댓글을 올리셨던 분께는 본의 아니게 내용이 지워진 것에 대해 정말로 죄송스럽구요. 모바일 관리자 계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티스토리 담당자에게 문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의 글은 백업된 원고를 올린 것이기 때문에 다시 올리는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올리신 댓글의 내용을 다 기억할 순 없습니다만, "엔트로피"를 비롯한 평형성의 원리와 역행하는 자연 내의 움직임과 현상들에 대해 말씀 하신 것으로 기억 합니다. 댓글의 내용은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엄연한 사실이죠. 그러나, 저의 블러그에서 "평형성의 원리"를 언급 한다고 해서, 평형성의 원리에 '역행'하거나 '반'하는 또다른 힘의 원리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저의 블러그를 보시는 모든 분들이 이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만약, 저의 블러그의 내용을 "평형성의 원리"외의 것은 존재 하지 않는다고 이해했거나, 그렇게 억지를 부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해력이 다소 떨어지거나 불필요한 아집을 부린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방향성을 가진 다양한 물리적, 에너지학적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힘의 작용은 평형성의 원리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최근에 과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엔트로피"와 같은 무질서로의 진행이 어느 순간 무한정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오히려 엔트로피를 방해 하는 듯한 영향력과 별들의 질서, 그리고 새롭게 진행되는 우주내의 질서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질서와 창조를 만드는 힘과 무질서로 향하는 힘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는 견해가 신 과학계의 대세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양성"의 포용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게 해야 다양한 발전의 가능성을 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저의 견해와 "평형성의 원리"는 절대진리임을 전재로 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편협은 법칙이 아닌 것을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자료를 조금만 살펴 보아도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주전체를 관장하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법칙"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에 대한 반론과 부작용의 도출에 대해 "끌어당김의 법칙은 생각의 힘과 관련된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궁색한 변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시간에도 "끌어당김의 법칙"을 순수한 마음으로 트레이닝하는 사람들을 욕보이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누를 범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의 긍정에 대한 심리는 사실상 '종교'이다.

'더 시크릿'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의 한계는..

맹신적 긍정의 생각과 끌어당김의 법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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