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끄적임... 사색

'결핍에 대한 인지' 없이는 나눔도 없다.

한아타 201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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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실천한 유명한 여배우가 있다. 바로 오드리햅번이다. 그녀는 미모나 연기 생활 만큼이나 나눔에 있어서 탁월한 모본을 남긴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녀를 죽을때까지 나눔을 실천하도록 하게 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구체적인 계기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이다. 그치만, 좀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짚어가다보면, 본질적인 또다른 이유도 있다. 그것은  "결핍에 대한 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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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드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기아에 허덕이는 수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불쌍한 느낌을 가졌다. 식량 자체의 '부족'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인식의 '부족'이나, 식량 분배에 있어서 공평하지 않은 공의의 '부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움직인 것은 바로 그러한 '부족'에 대한 인지 즉, "결핍에 대한 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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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우연히 알게된 나치당원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사실 때문에 큰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나눔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역시, 아버지로 인해서 생겼을 수 있는 공의나 사랑의 실천에 대한 "결핍의 인지"가 크게 작용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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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결핍에 대한 인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정적인 요소"에 대한 '직시'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누군가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적인 말이나, 무작정 긍정적인 말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긍정이라는 말은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이 의미를 곰곰히 생각 한 이후에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나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사리분별 내에서 '아니'라고 생각하는 범주의 것을 "옳다고 인정"하려고는 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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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반적인 의미의 '긍정적'이라는 말은, 좋은 통념을 가지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좋게 생각하고, 남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면을 알려주거나 나눠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역시, 최초의 시작은  '필요한 어떤 부분에 대한 인지' 즉 "결핍에 대한 인지"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를 두고 정.부정의 차원으로 문제를 비하하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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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심해야 할 부면도 있다. 누군가 이야기 했듯, 우리는 누군가를 다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은 틀릴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한 줄 알았는데, 그가 이미 물질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성품적으로 부족하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우리가 '나누어 주려는' 말이나 행동은 자칫 그 사람의 자존심을 심하게 상하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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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런 경우에...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너에게 이런 부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거든..."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눔이든 지적이든... 그런 전재를 통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상태를 고려하고 있음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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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그렇게 전제를 두고 접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니가 뭘 알아? 니가 날 다 알아? 어디 함부로 날 안다고 얘기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 하며, 마음의 이빨을 드러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왕에 그 사람을 배려하려 했다면, 나는 이런 그 사람의 특성도 고려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인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이야기들을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기는 커녕, 전재를 구하고 한 말들에 대해서까지 이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 판단이나 결론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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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와는 속을 툭 터 놓고 마음속 푸념을 늘어 놓을 수 있는 부담없는 친구가 되기보다는... 멀리서 관조하며 그의 약한 부분을 맘속으로 응원하는 것이 최상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인정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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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 했던 부분들을 정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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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에 대한 인지" 없이는 나눔도 없다.
** "결핍에 대한 인지"가 오해였든 그렇지 않든 그 사실 자체를 정.부정이나 부정.긍정의 차원으로 논리적 비하를 하는 것은 웃기는 정서이다.
**  "결핍에 대한 인지"를 통해 돕는 말을 하려고 할 때도, 상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전재나 양해를 구하는 태도를 먼저 보이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우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냥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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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긍정'적인' 사람이나,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두가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에 대한 인지' 없이는 긍정적인 태도 역시 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한정의 긍정'적인' 태도가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사회적인 권력자들에 대한 일방적 긍정'적인' 태도가 무엇을 거두었는지를 생각하면 왜 현실에 대한 직시나 '부정에 대한 인지'가 중요한지가 드러난다. 물론, 그러한 '인지' 조차도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편향되고 치우친 태도로 인해 거두는 쓴 열매를 피할 수 있다. 때때로 오류를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냥, 현실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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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는 누구에게도 부정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요." 라거나,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아요." 라고 단정하여 말하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하자. 그런 절대적인 단정처럼 실제 그럴 수 있지도 않거니와 설혹, 그렇게 할 수 있을지라도, 그건 다른 사람에 대한 또다른 '부정적인 시각'이니까 말이다. 부디, 자신의 정당성을 드러내려는 몸부림으로 자신을 치장하려 하지 말자. 그건 과신이며 안스러운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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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역시... 나눔에 있어 형식에 치우친 '오드리될뻔'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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