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깨달음

두려움이 세상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한아타 2022. 1. 25.

세상을 움직이는 두려움

 

우리는 이 지구별에 살면서 많은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테두리는 국가, 종교 같은 것들이다. 이 외에도 특정 동아리나, 모임, 학교 등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우리의 포지션을 규정 짓는다. 이러한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 우리는 가끔 우리의 정상적 자아가 심하게 왜곡되고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설상 가상으로, 그 테두리 내에 있으면 자신의 자아가 그토록 흉하게 왜곡되었다는 사실 조차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몇몇의 정신적 강함을 가진 사람들만이 나중에 가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참된 위치와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좀 추상적으로 들리는가? 그래, 그렇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좀 구체적으로 언급해 보면 이런 것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때, 인터넷을 달구던 사진 몇 장이 있었다. 그것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있었던 것을 찍은 사진인데,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붙잡힌 한 어린 소년의 팔을 트럭 바퀴로 뭉개서 부러뜨리는 사진이었다. 아무도 그 모습을 보고 제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 주변의 무리는 그 모습을 관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이 이러한 인륜적 파괴의 잔인함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하였는가? 그들에게 내재해 있는 종교적 관념 이 그렇게 하였다.

 

세계에서 10위권 안에 든다는 잘 알려진 한 종교는, 자녀와 결혼하는 사람이 같은 종교인이 아니거나 그 종교의 신자가 아닐 경우 아버지의 성직자로서의 직분을 박탈한다. 아버지가 그러한 딸을 축복하기 위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절대 용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니며 그 가족을 괴롭힌다. 또한 이 종교는 자신의 종교 구성원에 의해 자신들의 종교적 비위나 의문이 제기되면 거의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을 제명 조치한다. 그리고, 제명되어 있는 동안 영구적으로 자신들의 종교 구성원들과 영원히 모든 교제를 금한다. 이를 어길 경우 어긴 구성원에게도 역시 똑같은 결과가 내려진다. 문제는 이 종교의 구성원들이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거다. 제명된 사람의 결혼식이나 심지어 그의 장례식에도 그의 벗들 중 아무도 참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지 못한다.

 

관념의 포로

 

무엇이 인륜적 자아를 그토록 잔인하게 일그러뜨려 놓았는가? 역시 그들을 감싸고 있었던 것은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관념 이었다. 인류가 역사를 거듭해 오면서 한편으로 인륜적 사랑의 기틀을 발전시켜 온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무수히 많은 관념의 희생자들을 만들어 낸 것도 사실이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이나, 현대의 사상적 희생자들을 만들어 낸 것들을 살펴보면 다수의 관념적 에너지 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반인륜적인지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다수의 관념적 에너지 저변에는 무엇이 깔려있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두려움 이다. 그들의 복지를 지켜줘야 할 사상적 테두리가, 그리고 그들을 자애롭게 보살펴 준다는 그들의 신 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들의 내면적 공동체 가운데서 내쳐지고 격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테두리는 다름 을 다름 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틀림 으로 강력하게 규정하기 때문에 그 구성원들은 인간 본연의 인륜성과 도덕성을 꺾으면서까지 자신의 내적 자아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찌된 일인지 일정테두리 내의 구성원들 모두가 특정 부면에 대해서는 정신질환자로 돌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정상적인 사람이 일정 수준의 사념 에너지 에 의해 관념의 포로 가 되어 버리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정당화하고 정당화한다. 모든 것들이 두려움이라는 파괴 에너지 의 열매이다. 입으로 사랑을 말하면서 일정수준 사랑의 행위를 한다 해도 결국 그들을 묶어주고 결속시키는 것은 두려움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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