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깨어나기

'생각하는 자를 지켜본다'는 것

한아타 2022. 2. 1.

'생각하는 자를 지켜본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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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당신은 그 생각뿐아니라 그 생각의 목격자로서의 자신 또한 의식하게 됩지다. 새로운 차원의 의식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임에 따라, 그 생각의 저변이나 뒤안에 있는 더 깊은 곳의 당신 자신을, 그 현존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당신을 점령하고 있던 생각은 힘을 잃고 재빨리 자리를 피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더 이상 거기에 힘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멋대로 날뛰는 생각의 횡포를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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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자리를 비키면 당신은 생각의 흐름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심'의 틈새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틈새가 처음에는 몇 초에 지나지 않겠지만 점차 길어질 겁니다. 무심의 틈새를 경험할 때, 당신은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평소에는 마음에 의해 가려져 있던 존재와의 자연스러운 합일감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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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거듭할수록 고요와 평화의 느낌이 점점 깊어질 것입니다. 사실, 그 깊이에는 끝이 없습니다. 당신은 또한 깊은 내면에서부터 불가사의한 존재의 기쁨이 번져 나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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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결코 무아지경의 상태가 아닙니다. 결코 의식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평화를 얻는 대신 의식이 흐려지고, 고요함을 얻는 대신 활력과 예민함이 줄어든다면 무엇 때문에 그걸 얻으려고 애쓰겠습니까? 내면의 연결 상태 속에서 당신 자신을 생각과 동실시했을 때보다 훨씬 더 또렷이 깨어 있게 될 것입니다. 존재의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와 더불어 에너지 장의 진동 주파수가 높아져서 몸이 더욱 건강해지고 생명력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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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의 영역으로 깊이 들어감에 따라, 소위 순수의식의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는 현존하는 느낌이 너무나 강렬하고 매혹적이어서 모든 생각과 감정, 육체뿐만 아니라 외부 세상 전체가 상대적으로 무의미해집니다. 순수의식의 상태는 자기 중심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기가 없어지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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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제야 '나 자신'에 대한 예전의 생각들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현존이야말로 당신 자신의 진정한 본질이며, 동시에 당신보다 훨씬 더 위대한 무엇입니다. 내가 말하는 바가 역설적이거나 모순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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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자를 지켜보는 대신 단순히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지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흐름 속에 틈새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단지 지금 이 순간을 확고하게 의식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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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움직임으로부터 우리의 의식을 거두어들여서 주의를 집중하고 예민하게 깨어 있음으로써 무심의 틈새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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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일상생활을 계속하면서도 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단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일상적인 활동에 목적을 부여하고 거기에 최대한 주의를 집중합으로써 그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하십시오. 집이나 직장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도 계단 하나하나에, 걸음을 옮겨놓는 동작 하나하나에,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하나하나에 주의를 집중하십시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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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씻을 때에도 거기에 수반되는 모든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물이 흐르는 소리와 물이 닿는 느낌, 손의 움직임, 비누의 향기 등을 놓치지 마십시오. 자동차를 탈때에도 문을 닫은 후 잠시 모든 동작을 멈추고 호흡의 흐름을 지켜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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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지만 강렬한 현존의 감각을 느껴 보십시오. 그렇다면 이러한 수행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당신이 느끼는 내면의 평화가 어느 정도인지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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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마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마음의 흐름 속에서 어떤 틈새를 만들 때마다 의식의 빛은 점점 더 밝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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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마치 아이의 재롱을 보면서 미소짓듯이 머릿속에서 들여오는 목소리를 향해 미소를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마음에 의존하지 않게 됨으로써 마음이 지어내는 내용물을 그리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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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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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도구이며 연장입니다. 마음이란 특별한 과업에 사용되기 위해 거기 존재하는 것입니다. 일이 끝나면 내려놓아도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 중에서 80~90퍼센트는 반복적이고 부질없는 잡념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부정적인 성질을 품고 있을 때도 적지 않아서, 대부분의 생각들이 해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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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의 마음을 잘 관찰해 보면 내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겁니다. 부질없고 해로운 생각들로 인해 소중한 에너지가 새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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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행렬이란 사실, 중독이나 다름없습니다. 중독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중독이란 나보다 더 강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거짓된 즐거움을, 고통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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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생각에 중독될 수밖에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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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내용물과 활동이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멈추면 자신의 존재 또한 끝장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성장함에 따라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에 기초해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거짓된 자아를 '에고'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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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마음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에고라는 용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그말을 사용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함으로써 창조된 거짓된 자아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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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에게는 현재의 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와 미래만을 중요하게 여길 뿐입니다. 이는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에고로 존재하는 한 우리의 마음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에고는 항상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를 살아 있게 하려고 합니다. 과거가 없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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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또한 스스로를 미래에 투사함으로써 계속적인 생존을 보장받으려 하고 거기에서 어떤 해방이나 만족감을 얻으려고 합니다. 에고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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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나면 난 행복할 텐데, 저런 일이 생기면 난 평화로워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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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가 현재에 관여하고 있는 듯이 보일 때조차도, 에고가 보고 있는 것은 현재가 아닙니다. 에고는 과거의 눈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미래의 목적을 위해서 현재를 하나의 수단으로 축소하기 일쑤이지요. 여러분 스스로 마음을 잘 관찰해 보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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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자유를 향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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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분석력과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필요하다면 좀더 집중적으로 좀더 분명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지만, 마음을 잃어버리고 싶진 않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죠.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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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지배하는 단계는 의식의 진화에 있어서 한 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마음은 괴물로 자라나 우리 자신을 파괴할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생각과 의식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생각은 의식의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생각은 의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의식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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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생각을 딛고 솟아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더 낮은 차원으로, 동물이나 식물의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의 상태에 있을 때에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면의 중얼거림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평화롭게,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마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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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부릴 수 있게 되고, 무언가 창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면 시계추처럼 생각과 생각 없음 사이를, 유심과 무심 사이를 몇 분 간격으로 오갈 수 있을 겁니다. 무심이란 생각의 헤아림이 없는 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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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그런 상태에 있을 때에만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생각은 자기보다 훨씬 더 광대한 의식 영역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새 힘을 잃고, 혼란에 빠지고, 파괴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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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본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도구입니다. 다른 마음들과 대적할 때 공격과 방어를 하고, 정보를 얻고, 저장하고, 분석하는 일은 잘하지만 창조적이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들의 창조력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무심의 장소로부터, 고요한 내면으로부터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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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창조적인 충동이나 통찰에 형상을 부여할 뿐입니다. 위대한 창조적인 돌파구가 열렸다고 말해 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미국의 저명한 수학자들에게 연구 방법을 질의한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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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창조하는 활동에 있어서 생각은 부수적인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창조적이지 못한 이유는 생각하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을 멈추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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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명과 육체라는 기적이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마음보다 훨씬 더 위대한 지성이 작동되고 있음을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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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이 0.2밀리미터도 안 되는 인간 세포의 DNA가 어떻게 600쪽 분량의 책 100권 정도를 채울 수 있는 지령을 담고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속에서 작용하는 지성이 얼마나 광대한지, 그리고 우리의 앎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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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그러한 지성과 다시 연결된다면 경이로운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마음은 자기 자신보다 더 위대한 무엇인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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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처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 저 자 : 에크하르트 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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