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끄적임... 사색

나를 위한 객관화는 필요하다

한아타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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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객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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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자신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본질 자체를 정형화 하거나 부러지게 정의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적어도 자신의 대체적 성향 자체를 진솔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객관적 시각으로 스스로를 관조하는 것과
'겸손한 인정(수긍)'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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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겸손의 외향'은...
진심이 아니라, 승인받고자 하는 몸부림일 뿐이고...
자신의 품위를 꺽고 싶어 하지 않는 처절한 고고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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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화 되어 있지않은 자신의 본연의 모습은
그냥, 스스로가 '바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일 뿐이다.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를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하는가?'와 혼동한다는 것이다.
다른사람에게 투영되어 필터링된 파편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그것을 진짜 자신의 모습인 양 생각한다.
내가 '주관적(독단적)'으로 생각한 게 아니니
그게 진짜 '참 모습'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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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올바른 직언을 잘 해주지 않는다.
그 어떤 경우에도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입이서 나간 말로 생길 결과를 늘 염두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감정을 죽인 최대한의 '돌직구'라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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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수십년간에 걸친 통계학이나
학자들이 피땀으로 연구한 방대한 자료를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을 싫어 한다.
자신은 그런 '정형화'된 자료를 벗어난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그런 자료들에 적용시켜 보지 못하는 것은
실제의 독특함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기존의 다른 '평범함' 속에 파묻히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흔히 그런 사람들은 대중적 자료들이나 연구들을 거부하고
기도를 통해 얻어진 신에 의한 징조나 전조,
혹은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에 매달리곤 한다.
그래야 자신의 '독특함'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 방어기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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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규한 세월속에 만들어진 데이터나 연구들은
일반화의 오류나 선입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다.
사람이 아무리 독특한들...
수술을 하거나 건강 검사를 하기 위한 제한된 상황에서는
메스나 핀셋같은 '도구'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성품이나 감정같은, 개체로서의 독특함을 알기 위해서도
잣대로 삼아야 할 일종의 '도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에 대한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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