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깨달음

긍정만을 말하는 것은 기적을 가져 오지 않는다.

한아타 2012. 10. 11.

 

 



많은 자기 개발서, 그리고 강사들, 명사들이 긍정의 힘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정당한 고찰이나 고통에 대한 자각없이 그러한 기적이나 성공이 가능한 것이냐고 말이다.

긍정, 긍정.... 많은 나라들에서 이 단어는 거의 주문 같은 것이 되었고, 우주적 에너지를 끌어오는데 이것만큼 강한 것은 없다고 일컬어져 왔다. 시크릿, 긍정의 힘, 꿈꾸는 다락방.... 이 모든 것들이 '긍정의 힘'을 모티브로 쓰여졌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가? 고통에 대한 자각은 어떻게 해서든 억눌러야 하는 것이고, 기적을 위한 무한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드러난 사실은 그러한 억지스런 '긍정적' 시도나 괴변이 힘이 없음을 말해준다.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은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3억명이 넘는다. 이 수치는 전세계인구 중 20명당 한명꼴이고, 팔린 책 대비 빌려 읽거나 어께너머로 읽은 사람 같은 비공식 독자들을 합치면 이 수치의 배가 넘는다. 공산권 나라나 출판이 되지 않은 언어에 속한 나라들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처럼 출판이 된 나라들 안에서는 7명당 혹은 5명당 한명은 이 책을 읽거나 접했음을 알수 있다.

읽은 사람의 1%라도 그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있는가?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3억부의 1%라면 300만명은 의심의 여지 없이 변화를 뚜렷하게 경험했어야 하지만, 그 최소의 가능성인 1%의 목소리도 접하기 힘들다는 걸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긍정'은 단순한 격려의 암시를 넘어 이제는 종교와 같은 것이 되었다. 그것 자체에 신비스런 힘이 있다고 여기는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다 좋다. 긍정도 좋고, 신비스런 힘도 좋다. 하지만, 긍정의 부르짖음으로 인해서 생긴 부정적인 요소는 어쩔 셈인가?

끌어당김의 법칙.... 소위 긍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을 끌어당긴다는 맹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 삶의 '무변화'나 심지어 더 많은 고통의 상태는 심각한 내적 '괴리감'을 가져왔다. 그러니까, '나는 왜 안될까?' '하라는 대로 했는데 내가 더 좋아 지지 않는것은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라는 식의... 그야말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99%가 넘는 사람들을 상대로 "변화가 없는 것은 너희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부정적인 생각"의 극치의 열매인 것이다. 이 "생각" 조차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긍정교 신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긍정교 현상'은 또 다른 형태의 정신적 '눌림' 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런 감정적 흐름을 막거나 저해하는 또 다른 수단인 것이다. '긍정의 오류' 인 것이다.

나는... "기적"은 순리적인 감정과 생각의 흐름으로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강의나 나의 글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부면이기도 하다. 나의 다른 글들에서 언급되는 "평형성의 원리"가 바로 이러한 괴리감을 없애 줄 열쇠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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